[덕양전]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을 기리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자리한 덕양전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제10대 양왕(구형왕)과 왕비를 기리는 사당이다.
왕산 기슭 허준순례길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덕양전은 1983년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양왕이라 부르는 구형왕은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로 덕양전에서는 해마다 봄가을 춘추향례를 올리고 있다.
가락국 즉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은 522년(신라 법흥왕 19)에 신라에 선양하고 별궁인 산청의 지리산 수정궁으로 옮겨온 후 5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나라를 보전하지 못한 내가 어찌 흙 속에 묻힐 수 있으랴. 차라리 돌속에 들어가서라도 가야 백성을 지키겠노라’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는 구형왕은 나라를 넘겨줬기 때문에 양왕이라 일컫는다.
스스로 심산유곡에 묻히기를 원했던 구형왕은 자신의 한을 외진 산골에 돌무덤으로 남겼다.
6가야의 맹주로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4국시대를 얼어가며 찬란한 가야문화를 꽃피웠던 가락국은
주변 열강들의 세력다툼 속에 국운을 잃고 수로왕이 나라를 세운지 490년 만에 신라에 나라를 넘겨주고 말았다.
그 후 가야제국은 차례로 신라에 병합되어 서기 562년 대가야의 멸망을 끝으로 520년 가야역사는 이 땅에서 사라졌다.
덕양전은 홍살문과 함께 직사각형의 돌담을 두르고 그 안에 영전각, 안향각, 추모재, 동재, 서재, 해산루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조선 정조 17년(17793) 왕산사 나무상자에서 발견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을 보존하기 위해 덕양전을 건립한 뒤
매년 봄과 가을에 문중유림과 가락종친, 지역주민 등이 참석하여 춘향대제와 추향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구형왕의 능으로 알려진 돌무덤은 지리산 상봉에서 불과 50리 정도의 거리에 있는 왕산 아래 능소라고 불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 깊은 계곡 마천에서 흘러내려온 임천 옆 덕양전이 구형왕릉의 입구로 이곳에서 산쪽으로 1킬로미터 쯤 올라가면 구형왕릉을 만날 수 있다.
덕양전에서는 봄에 춘향대제(음력 3월 16일)와 가을에 지내는 추향대제(음력 9월 16일) 외에도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삭망향례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덕양전에서 지내는 춘추〮향 제례는 경상남도로부터 모범적인 우수 선현 제례 행사로 선정됐다.
이처럼 가락국의 종묘제례는 오늘날 유서 깊은 유교의 고장 산청에서 제례문화의 근원지가 되어주고 있다.
정겨운 돌담을 두른 덕양전 경내에는 영전각, 안향각, 추모재, 동재, 서재, 해산루 등 여러 전각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전각들은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풍기고 있는데다, 한적하고 고요해 조용히 머물며 사색의 시간을 가지기 제격이다.
산청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호젓하게 덕양전 경내를 거닐다 보면 그 옛날 화려한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금관가야 속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과 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덕양전에는 해마다 김수로왕의 후손인 김해 김씨 문중에서 춘추향례와 삭망향화를 드리고 있는데,
향화는 한때 중단되었다가 1798년 왕릉아래 능침을 짓고 향례를 올린 뒤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덕양전이 있는 왕산 기슭에는 한국형 피라미드로 불리는 구형왕릉이 자리하고 있는데,
구형왕릉 입구 홍살문에서 왼쪽으로 난 가느다란 산길을 타고 올라가면 구형왕이 5년 동안 마지막 안식처로 살았다는 수정궁터가 남아 있어 가락국의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덕양전은 대중교통 이용 시 산청시외버스터미널정류장에서 농어촌 산청시외버스터미널-화계 행버스 승차 후 화산마을 정류장에 하차하면 도보 1분 거리이다.
주차는 덕양전 맞은 편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