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헌] 한 폭의 그림 같은 한옥의 낭만
경상북도 안동은 유난히 기와집이 잘 어울리는 고장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가다 보면 멋진 기와집과 정자 한 채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서 5번 국도를 따라 의성을 향해 가다 보면 안동땅을 막 벗어나기 직전 망호리에 자리 잡은 소호헌이 있다.
소호헌의 이름은 ‘소호’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고려시대 정4품 벼슬을 지낸 소씨가 살았다는 뜻의 ‘소’와 서쪽에 큰 호수가 있다는 뜻의 ‘호’가 합쳐져 생겨난 이름으로
지금은 소호헌 앞의 도로가 풍광 일부를 가리고 있지만 과거 소호헌 주변은 빼어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시원한 전망이 일품이었다.
소호헌은 보물 제475호 지정된 조선 중기의 별당 건물로 퇴계 이황의 제자인 조선중기 학자 함재서해가 사용한 서재였다.
고전적 기품과 낭만적 운치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소호헌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여전히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정원이 정말 아름답다.
바로 보이는 팔작지붕의 곡선이 한옥의 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옆에 붙은 작은 건물들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어 소박한 모습을 함께 엿볼 수 있다.
좌측 담장엔 은행나무가 담 밖을 내다보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돌로 쌓아올린 우물과 큼지막한 큰 나무 한 그루가 마당을 지키고 있다.
소호헌에는 순국지사 서상부의 기적비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서상부는 한말 의병장으로 1896년 의성 봉산전투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애국지사다.
그는 일본군의 신무기에 대항해 혈전을 펼치다 전사했다.
안쪽 마당을 지나 일각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면 바로 소호헌이 보인다.
소호헌의 누각은 오늘날의 테라스처럼 야외를 볼 수 있는 작은 누마루가 달려있다.
삐그덕 거리는 문을 열어보면 옛날 옛적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방을 볼 수 있다.
정자와 사랑채, 독서실 기능을 겸한 소호헌에는 고전적 기품과 낭만적 운치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여덟 칸의 마루와 두 칸의 온돌방을 정자로 연결하여, 형태상으로도 힘과 권위 그리고 화려함이 드러나 보이는 건물이다.
건물의 형태가 독특한 소호헌은 조선 중기 학자 서해가 거처하던 곳으로 원래는 고성이씨 임청각 이명공의 다섯째 아들이자 청풍군수를 지난 무금정 이고의 분가주택이었다.
가난했지만 온화한 성품과 더불어 학식이 뛰어났던 서해가 시각장애인이었던 이고의 딸을 반려자로 삼았고,
서해의 인품과 인간적인 매력에 끌린 이고가 사위인 서해에게 소호헌을 선물했다.
이곳에는 서해의 아들로 판중추부사를 지낸 약봉 서성이 태어난 태실이 자리하고 있다.
강당 안에는 약봉선려인 ‘약봉선생의 누추한 집’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나무 본연의 색을 간직한 소호헌의 건물들은 오래되어 아름다운 느낌이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400년이 넘은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륜이 느껴지는 건물들은 햇살을 받으면 더욱 아름다운 빛이 난다.
자연스럽게 뻗어 내려진 처마끝의 곡선미도 너무나 아름답고, 여름이면 처마끝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듣기 좋으며,
겨울에는 작은 고드름 하나를 뚝 따서 깨물고 싶어진다.
소호현 동측 뒷면에는 하인들이 사용하던 방이 붙어있다.
하인방은 앞쪽에서 보는 느낌보다 뒤쪽에서 보는 느낌이 더욱 더 아담하고 아름답다.
황토와 돌, 나무와 하얀 한지가 어우러져 단출하면서도 소박한 모습이 투박하지만 따사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건물 밖에서 내다보는 소호헌의 모습도 고요하고 기품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변 경관을 감상하는데 방해 받지 않을뿐더러 소호헌을 늠름하게 감싸안고 있는 산들로 인해 조용하게 힐링하기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소호헌은 대중교통 이용 시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소호헌이 있는 망호리까지 38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또 안동터미널 정류장에서 81번 버스를 타고 안동대교 정류장에서 438번 버스로 환승한 후 소호리 정류장에 하차하면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주차는 소호헌 바로 앞에 주차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편하게 차를 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