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허삼둘고택] 조선 말 여권신장을 상징하는 여성 중심의 고택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함양은 조선시대 유학의 메카였다.
때문에 마을 어디를 가든 고풍스러운 정자와 누각이 있고 유독 많은 반가(班家 양반가옥)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산 좋고 물 또한 맑고 풍부해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기 좋았던 안의면에서 꼭 살펴보아야 할 가옥 중 하나가 바로 함양허삼둘고택이다.
1918년 진양 갑부인 허씨 문중의 허삼둘이 윤대홍에게 시집와서 건립한 건물인 허삼둘가옥은 보기 드물게 안주인의 이름이 붙어있다.
중요민속자료 제207호로 지정되어 있는 허삼둘가옥은 우리나라 전통가옥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성중심의 공간이라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여성을 위한 공간인 안채가 중심에 놓은 예가 거의 없는 국내 유일한 예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건축이 대부분 남성중심의 건축이었다면 함양허삼둘고택은 경제적 실권을 쥐고 있던 안주인의 의견이 존중되어 안채가 비중 있게 지어진 가옥이다.
조선 말기 신분제도 철폐와 신흥부농층의 출현으로 변화된 사회상이 반영된 집으로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2004년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나 사랑채와 안채 일부가 불에 타 아쉬움이 있지만, 남아 있는 골조를 통해 조선시대 여성을 배려한 주거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갑오개혁으로 양반과 상민의 구별을 없애고 사회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력만 갖추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집을 지울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재산을 모은 일부 상인이나 부농들은 앞다투어 과거 양반만이 누릴 수 있었던 주택 양식을 본떠 화려한 집을 지었다.
함양허삼둘고택은 안채와 곳간채, 안행랑채, 사랑채가 크게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아 가옥의 특징은 안채의 평면구성이 매우 독특한데, ‘ㄱ’자 형태로 꺾이는 모서리 부분을 안쪽으로 한 번 접어 생긴 공간에 부엌을 배치해 가사활동을 편리하도록 만들었다.
여성을 배려한 건축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평면이 ‘┛’ 자형으로 정면 7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향한 사랑채 양쪽 끝에는 누를 세운 듯 높게 앞퇴를 두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사랑채 오른쪽에는 바깥행랑채, 왼쪽에는 안채를 향해 있는 안행랑채가 있으며, 안채와 안행랑채 사이에 곳간채가 있다.
함양허삼둘가옥은 마을길에서 이어지는 돌담길 중간 정도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을 바라보고 담장을 옆으로 비스듬히 꺾은 건물로 솟을대문이 세워져 있다.
솟을대문이 있는 어칸과 만나는 담장을 줄여 대문의 문설주와 만나게 이은 모습이 독특하다.
함양허삼둘가옥은 1918년 갑부 집안 여자 허삼둘이 남편과 함께 지은 기와집으로
안채로 드나드는 대문이 사랑채로 이어지는 대문과 별도로 마련돼 있고, ‘ㄱ’자 모양인 안채 구조도 독특하다.
꺾이는 모서리에 부엌을 두고 앞쪽은 물론 장독대 따위가 있는 뒤로도 문을 내어 편리함을 더했으며
부엌에서 내다보면 안채 대문과 안마당은 물론 사랑채쪽 인기척까지 곧바로 알아챌 수 있다.
부엌이 전체를 장악한 듯한 이 집의 구조를 통해 집안 실권을 안주인이 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예라고 할 수 있으며,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한옥이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 밝힐 수 있는 좋은 자료라 할 수 있다.
함양허삼둘고택은 대중교통 이용 시 함양지리산고속 정류장에서 농어촌 함양지리산고속-안의 방면 버스 승차 후 안의 정류장에 하차하면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주차는 함양허삼둘고택이 있는 마을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