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정몽주선생묘] 님 향한 일편단심,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만나다
용인시는 경기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도농복합도시로 최근 10여년간 급속히 도시화되면서 거대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국민속촌과 에버랜드가 조성되어 있어 연간 천만 명의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골프장, 박물관, 미술관, 스키장, 휴양콘도미니엄 등이 집중되어 있는 문화관광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용인시는 한국문화유산의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용인 곳곳에 나라와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과 용장의 묘역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곳이 바로 포은정몽주선생묘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라는 정몽주의 <단심가>는
조선 건국 후 정몽주를 회유하려던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시로 유명하다.
스러져 가는 고려에 끝까지 충성하고자 했던 포은 정몽주의 묘가 바로 용인시 모현읍 능원리에 자리하고 있다.
용인은 조선 기호학파 산실로 예학의 본향이자 포은 정몽주, 정암 조광조 선생이 묻혀 있는 유학의 성지이다.
용인시를 찾았다면 경기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포은정몽주선생묘는 필수 코스로 꼭 들려봐야 한다.
충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포은 정몽주는 1392년 개성의 선죽교에서 피살됐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한 이후 이방원은 <하여가>로 설득과 회유의 마음을 전했으나, 정몽주는 <단심가>로 본인의 의지를 답했고 결국 이방원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포은정몽주선생묘는 무료로 개방되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안내도가 잘 설치되어 있어서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다.
묘역에는 묘표와 신도비가 있다. 묘표는 1517년에 태학들이 정몽주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중종에게 청원하여 세워졌다.
신도비는 1699년에 세웠는데 현종 때의 문신 김수증이 비문을 썼고, 글은 송시열이 지었으며, 전액은 김수항이 썼다. 입구로 들어서면 쭉쭉 뻗어있는 소나무와 잔디밭이 잘 조성되어 있다.
묘역으로 오르기 전에 만날 수 있는 한옥은 포은 정몽주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영모재라는 곳이다.
제사 외에도 학문을 위한 장소로도 사용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이곳은 한옥의 고급스러움과 단아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고즈넉한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길 수 있다.
고려 후기 문하찬성사, 예문관제학, 인물추변도감제조관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학자였던 포은 정몽주는 이방원의 수하가 휘두른 철퇴에 맞고 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원래 개성 근교 풍덕군에 안장되었는데 1406년 고향인 경상도 영천으로 이장하던 중 용인에 묘를 쓰게 되었다.
이유인 즉 영천으로 가던 면례 행렬이 용인에 잠시 멈추게 되었는데 돌풍이 일고 명정이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가 이곳에 떨어지면서
영천으로의 이장을 멈추고 용인을 장지로 결정하여 부인 경주 이씨와 함께 이곳에 포은 선생의 묘가 조성되었다.
묘역으로 올라가는 곳 입구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와
그의 어머니가 지은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로 시작하는 <백로가>가 비석이 새겨져 있다.
짧은 다리를 건너면 푸르름이 짙게 깔린 넓은 잔디밭을 만날 수 있다.
얼핏 아름다운 정원에 들 어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으로, 아름드리 소나무와 연못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편하게 찾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도 좋고 혼자 호젓하게 사색의 시간을 갖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포은 정몽주의 넓은 묘역은 잘 관리되어 있어 다양한 볼거리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묘역 오른쪽에는 지헌 이석형 선생의 묘가 있고, 왼쪽이 정몽주 선생의 묘이다.
미려한 산의 능선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당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석형 선생 묘는 조선 초기의 문신 저헌 이석형과 부인 연일정씨의 합장묘이다.
묘역 안에는 묘비, 문인석, 향로석, 상석 등의 석물이 잘 갖춰져 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까지는 돌판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포은 정몽주의 묘에 오르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는 묘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왕릉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왕릉이라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단분으로 봉분된 묘소에는 비석, 상석, 망주석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원래는 둘레돌이 없었던 묘소였지만 1970년 둘레돌이 설치되어 더욱더 안정감을 더했다.
묘역에는 묘표와 신도비가 있다.
묘표는 1517년에 태학들이 정몽주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청원하여 세운 것이며, 그 앞면에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신도비는 1699년 세워졌으며, 현종 때의 문신 김수증이 비문을 썼고, 글은 송시열이 지었으며 전액은 김수향이 썼다.
포은 정몽주 묘역은 1974년 곡담을 보수하였으며 장명등, 망주석, 석양, 호석, 난간석, 그리고 별도의 새로운 문인석 1쌍 등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포은정몽주선생묘비에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 뜻을 기리기 위해 고려시대의 벼슬만을 쓰고 조선왕조 때 주어진 시호를 기록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포은정몽주선생의 충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포은정몽주선생묘 입구에는 비석들이 많이 늘어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곳은 연안이씨 비각공원으로 후손들의 충심이 느껴진다.
경기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포은정몽주선생묘를 찾으면 나라를 향한 정몽주의 일편단심 애국충절의 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곳이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주변의 나무와 잔디가 잘 조성되어 있어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가볍게 산책을 즐기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포은정몽주선생묘는 대중교통으로 버스 이용 시 용인공용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용인터미널 정류장에서
20번 버스 탑승 후 외대사거리.왕산교 정류장에 60번 버스로 환승 해 능원초.정몽주선생묘역입구 정류장에 하차하면 도보 12분 거리이다.
주차는 입구에 조성되어 있는 전용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