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명 | 창녕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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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남 창녕군 창녕읍 향교길 54 |
전화번호 | 055-530-1473 |
입장료 | 무료 |
[창녕향교] 조선시대 향교에서 배움과 예절의 의미를 되새기다
창녕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부곡면 비봉리에는 7,000여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가 발견된 대표적 신석기 유적지로 알려져 있는데,
노를 비롯해 신석기 유물이 발견돼 신석기 연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화왕산 서쪽 기슭에 있는 창녕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을 소장 전시되고 있어서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자랑하는 화왕산은 용암의 분출로 형성된 화산으로 용지를 비롯해 3개의 분화구가 있을 만큼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산으로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인 관룡사가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옥천계곡을 찾아오는 피서객들로 붐빈다.
그리고 조선시대 인재를 양성했던 창녕향교 또한 오늘날 배움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으로 창녕 여행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되어 있는 창녕향교는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효종 때 중건된 곳으로 191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대성전과 동무, 서무를 중건하고 1926년 풍화루와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또한 창녕향교에는 《창녕직원임록》을 비롯해 《창녕 유림놈유》', 《노비안》, 《교인안》, 《향교수이교구절목》 등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창녕향교의 화재는 1913년뿐 아니라 한국전쟁 때도 계속되었다. 화재로 건물이 탄 후에도 향교 건물은 어김없이 재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출입문인 외삼문과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공간이었던 명륜당과 동재, 서재 그리고 사당인 대성전과 동무, 서무 등의 건물이 있다.
앞에 명륜당이 있고 뒤에 대성전이 있는 향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각지붕 건물로 주춧돌이 원주식으로 되어 있다.
창녕향교는 외삼문인 추한문부터 시작된다. 그 뒤로 명륜당과 의례공간이 대성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5성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동무, 서무에는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사라졌다.
전국 대부분의 향교가 마찬가지로 창녕항교 역시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창녕향교는 다른 향교에 비해 많은 전적을 보관하고 있어, 특히 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창녕향교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의 지명은 창녕읍 교리다.
여기서 교리는 바로 향교로 인해 얻은 이름으로 우리나라 지명 중 교동 혹은 교리는 대부분 향교와 연관되어 있다.
창녕향교 대성전에는 5성의 위패가 동무, 서무에는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 형태는 앞에 명륜당이 있고 뒤에는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이다.
대성전은 향교의 핵심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가을에 제를 지낸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으로 오늘날의 학교 역할을 했던 곳이다.
향교는 지방사회 내부에서 자기발전의 도구로서 유학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알려주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향교는 상향적 역사운동에서 나타난 측면보다는 하향적 운동과정에서 형성된 교육기관으로 창녕향교도 마찬가지로
조선왕조의 성립과 함께 정책적으로 그 교육적 기능과 문화적 기능을 확대하고 강화하였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창녕향교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향교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만들게 한다.
정겨움이 느껴지는 돌담 뒤로 보이는 푸른 나무들과 한옥 기와의 멋스러움이 잘 어우러져 조용히 산책하며 사색의 시간을 즐기기 제격이다.
명륜당은 높은 석축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석축에는 연꽃무늬가 양각된 사찰 기단 면석이 혼용되어 쌓여 있다.
창녕향교는 출입문인 추한문 앞의 석축부터 예사롭지 않다.
좌우 한 쌍 모두 불교색이 짙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돌에는 연꽃 모양이 새겨져 있다.
원래는 사찰로 쓰였던 듯하다. 실제 창녕읍에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폐사지가 여럿 있다.
폐사지에는 아직도 비와 탑이 있어 그 옛날 번성했던 절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창녕향교는 전통을 이어가는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체험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통예절, 체험, 서예 강좌 등 조선시대 유학생들의 얼을 이어 예의, 도덕을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공간으로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음을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창녕향교는 대중교통으로 버스 이용 시 창녕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영신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영신버스터미널-남지(도천) 행 버스 탑승 후 창녕축협 정류장에 하차하면 도보 9분 거리이다.
주차는 창녕향교 앞에 마련되어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