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명 | 시인이상화고택 |
---|---|
주소 | 대구 중구 서성로 6-1 |
전화번호 | 053-256-3762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설/추석 연휴 |
입장료 | 무료 |
[시인이상화고택] 항일 민족 시인 이상화의 삶과 문학 세계를 만나다
시인이상화고택은 대구 계산동 2가에 위치한 곳으로 항일문학가로 잘 알려진 이상화 시인이 1939년부터 작고하던 1943년까지 거처했던 곳이다.
이곳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광복을 위하여 저항정신의 횃불을 밝힌 이상화선생의 시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상화 고택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선생의 우국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구시 중구 계산동에 위치한 이상화 고택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저항시인 이상화 선생의 1939년부터 세상을 떠난 1943년까지 마지막 삶의 시간을 보낸 역사적인 곳이다.
대구근대문화골목 2코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상화 고택 바로 담벼락을 마주보고 있는 곳에는
대한제국 때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가 빌려 쓴 1,300만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자고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서상돈선생의 고택도 위치하고 있다.
이상화 고택 입구에는 이상화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고택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있는 팜플렛과 대구근대골목투어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준비되어 있다.
이상화 고택은 본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ㄱ’자 모양의 한옥으로 지어져 있다.
고택 주위의 담장은 빨간 벽돌로 되어 있는데, 주변에 있는 근대문화골목과 계성성당, 교남YMCA건물 등과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어
근대화 시대 대구의 역사 현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상화 고택 주변은 도시개발로 인해 높은 아파트와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1999년부터 이상화 고택의 보존을 하자는 시민운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서
인근에 주상복합아파트의 건립 때 군인공제회에서 고택을 매입하였고 대구시에 기부를 하였다고 한다.
이 덕분에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와 같은 시를 남긴 이상화 선생의 항일정신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문화재를 보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집안 마당 한 켠에는 이상화 선생의 시비가 비석으로 만들어져 자리 잡고 있다.
학창시절 많이 읽어 보았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비에는
이상화 선생이 일제에 항거한 민족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선생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이상화 고택 내부는 아담하고 깔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안에는 이상화 선생의 사진과 동상 그리고 이상화 선생의 집필 작업을 했던 책상이 전시되어 있다.
시인이 짧은 생을 정리해 놓은 자료들은 물론이고 생전에 가족들과 사용하였던 낡은 가구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상화 선생은 저 책상에서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와 각 연마다 첫머리에 ‘마돈나’를 반복하는 <나의 침실로>,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서러운 해조> 등 많은 민족 저항의 글을 남겼다.
또한 이상화 고택 내부에는 이상화선생의 살아온 일생과 문학적인 업적을 자세히 전시해 놓고 있다.
이곳에서 민족저항 시인 이상화 선생을 다시금 알아보는 계기와 함께 위암과 폐결핵으로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선생을 잠시나마 추억할 수 있다.
이상화 고택은 대구시 중구 근대문화골목투어 2코스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고택을 관람한 후 바로 옆에 위치한 서상돈 고택과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를 함께 관람하면 더욱 유용하다.
또한 대구 3.1만세운동의 시발점이 3.1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약령시 한의학박물관, 제일교회, 화교소학교 등 다양한 대구의 근대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이상화 고택을 대중교통으로 찾으려면 KTX 동대구역이나 대구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반월당역에서 하차한 후 도보로 10분 정도 걸으면 이상화 고택을 만날 수 있다.
주차는 이상화 고택 주변에 있는 공영주차장을 유료로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