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벽당] 푸른 나무에 둘러 싸인 집, 붉은 꽃물결 출렁이네
가을의 전령사 붉은 꽃무릇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찾아갈 곳이 있다.
바로 광주시 충효동에 있는 환벽당이다.
이즈음 남도지방에는 꽃무릇을 볼 수 있는 유명한 곳들이 몇 곳 있다.
전남 영광의 불갑사와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함평의 용천사, 고창의 선운사 등인데
광주의 환벽당 역시 이곳들 못지 않은 아름다운 꽃무릇 군락을 볼 수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울창한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야산 언덕에 자리한 환벽당은 식영정에서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기에 아주 좋고,
불과 300미터 정도 떨어진 가사문학관 앞 다리를 건너면 바로 찾을 수 있는 작은 산기슭 솔밭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환벽당은 조선시대 나주목사를 지냈던 사촌 김윤제(沙村金允悌 1501∼1572)가 을사사화가 터지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유유자적 후학을 가르치던 별서정원으로
그의 제자로는 가사문학의 거장으로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송산별곡>등을 집필한 송강 정철이 있다.
무등산 자락 광주호 상류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환벽당은 광주시 기념물이었다가 지난 2013년 대한민국 명승 제107호로 승격된 곳이다.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의 제자였던 송강 정철이 10여년 동안 유숙하며 공부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김윤제는 정철이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갈 때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멘토였다.
김윤제와 정철의 만남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어머니와 함께 둘째 형을 만나기 위해 순천으로 가던 정철은 현재 식영정이 있는 성산 앞을 지나다 개울에 들어가 멱을 감았다.
이때 개울 옆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던 김윤제가 개울에서 용 한 마리가 노니는 꿈을 꾸다 깨었는데
잠에서 깨어 개울로 눈을 돌리자 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는 것이었다.
소년의 비범함을 알아본 김윤제는 순천행을 만류하고 정철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환벽당의 입구는 세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창계천 용소와 조대가 있는 곳에서 언덕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담양과 광주를 가르는 창계천 다리를 지나 소나무 숲 사이로 들어갈 수도 있다.
담장을 돌아 골목을 따라 가면 반대쪽 입구로도 들어갈 수 있다.
용소와 조대는 사촌 김윤제와 송강 정철이 처음 만났다는 이야기를 품은 장소로 바로 문 앞 하천변이다.
축대 아래에는 세 단으로 된 화계(花階)가 있고 그 밑에 네모진 연못이 있다.
그것들은 환벽당 마루에서 직접 바라볼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 아래 넓은 터는 김윤제의 집 본채가 있던 곳이니, 별당인 환벽당의 뜰이 아니라 본채에 딸린 후원의 일부인 셈이다.
입구에 들어서 잘 정비된 돌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가다 보면 환벽당을 만날 수 있다.
환벽당은 비스듬한 비탈에 자연석 축대를 쌓고 지은 남향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동쪽 2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서쪽 2칸은 방으로 되어 있다.
그 앞에 반 칸짜리 툇마루가 깔려 있다.
원래는 정각 형태였는데 후대에 중건할 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 이곳에서 선조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는데 방에서 대청으로 연결되는 곳의 문을 위쪽으로 들어올리면
방과 대청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시야가 탁 트이게 된다.
바람이 원활하게 들어와 시원해 지는 것은 물론이고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멋진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환벽당 안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편액과 임억령, 조자이 등이 쓴 시가 걸려 있다.
환벽당은 ‘푸르름에 들러 싸인 집’이라는 뜻인데 실제 언덕 위에 서 있는 정자는 소나무와 대나무에 둘러싸여 사철 푸르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이름 그대로 사방이 푸르른 환벽당은 별서 원림으로써 가치가 높은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광주에서 옛 선비의 삶의 향기를 엿보고 풍류를 만끽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환벽당으로 가면 된다.
푸르름에 둘러싸인 집, 환벽당 주변에는 푸른 소나무와 붉은 꽃무릇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흔히 ‘상사화’라 불리는 이 꽃은 보통 꽃과 다르게 꽃이 지고 난 후에 난초와 비슷하게 생긴 푸른 잎이 돋아나기 때문에 한 뿌리에서 난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슬픈 추억’이다.
환벽당 마루에서는 남쪽의 무등산과 창계천이 잘 내려다보인다.
원래 푸른 대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환벽당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앞쪽 축대 아래 커다란 배롱나무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집 뒤에는 왕벚나무가 있고, 옆에는 모과나무가 있으며, 또 축대 아래에 느티나무와 벽오동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돌담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환벽당을 떠올리면, 울창한 숲 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는 정겨운 모습이 생각나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이곳에서 조용한 숲을 거닐며 복잡한 세상을 잠시 잊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푸른 나무와 붉은 꽃, 싱그러운 공기를 듬뿍 들이키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환벽당의 매력으로 깊이 빠져들게 된다.
환벽당 아래 창계천가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다. 옛날 김윤제와 그의 손님들이 낚시를 즐겼다는 조대인데, 지금은 그 위에 기념비가 서 있다.
그 옆에는 지금도 늙은 소나무들이 기울어져 있어서 조대쌍송을 노래했던 옛사람들의 흥취를 상기시킨다.
여기에서 건너편을 보면 별 뫼 봉우리가 삿갓처럼 볼록하게 보인다.
조대 앞이 바로 정철이 목욕하다가 김윤제를 만났다는 용소이다.
환벽당이 있는 곳은 무등산옛길도 자리 잡고 있어서 무등산옛길 안내판도 있다.
무등산 주변으로 길이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옛길을 거닐면서 주변 정취를 느껴 보는 것도 아주 좋다.
뿐만 아니라, 환벽당 인근에 있는 호수생태공원에서 온갖 가을꽃들과 함께 호숫가를 거닐며 깊어 가는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환벽당은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환벽당을 찾는 관광객들은 안쪽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가 길가에 주차를 해야 한다.
대중교통으로 버스를 이용할 경우, 충효동환벽당(4328)(4327), 가사문학관(6093)(6094) 정류장에 하차하면 된다.